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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동정
작성자 채용학대종회장
작성일 2022-01-16 (일)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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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8.xxx.114
인천채씨의 기원(1)
                                                (인천채씨의 기원)

(정의) 고려시대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영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세거한 성씨.

(연원) 인천채씨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시조 채선무(蔡先茂)의 후손들이 인천에 세거하면서 채씨일문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하는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는 채귀하의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인천채씨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시조 채선무(蔡先茂)를 시조로 하며, 여말선초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시조로 한다.

 

채귀하의 아들 채영(蔡泳)은 대구 후동(後洞), [지금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서 태어났다. 진사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부친의 명에 따라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 출사하지 않고 대구시 팔공산 자락 미대동에 입향하였다.

 

(현황) 채영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입향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명현을 배출하고 대구·경북 인천채씨의 맥을 형성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과 채응린의 아들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1574~1644) 및 금탄(琴灘) 채선길(蔡先吉)[1569~1646],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1561~1638]과 그의 아들 백포(柏浦) 채무(蔡楙)[1588~1670], 19세기 말 효자로 이름난 치헌(痴軒) 채귀해(蔡龜海)[1850~1905], 19세기 문인 학자 미피거사(渼陂居士) 채화국(蔡華國)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일제가 1930년에 우리나라 성씨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까지 미대동 인천채씨는 약 74가구 정도가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도시화되면서 집성촌으로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역사)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추증되었다. 단소(壇所)는 대구 도곡산에 있다.
채선무의 아들 채신징(蔡愼徵)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손자 채보문(蔡寶文)이 1163년(의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내고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졌다.

(인물)
• 채보문(蔡寶文) : 1163년(의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병부시랑(兵部侍郞), 추밀원사(樞密院事), 예부상서(禮部尙書), 태자빈객 지제고(太子賓客知制誥),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고,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졌다. 『동문선(東文選)』에 칠언율시 3수가 전한다.
• 채수(蔡壽, 1449년 ~ 1515년) : 14세손. 1469년(예종 1)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대사헌, 충청도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었다. 저서로 《나재집》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 채소권(蔡紹權) : 채수의 아들. 1506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531년 경기도관찰사, 1533년 대사헌을 역임하고, 1535년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 채무택(蔡無擇, ? ∼ 1537년) : 1524년(중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1535년 대사간을 거쳐 1536년 부제학이 되었다.
• 채무일(蔡無逸, 1496년 ∼ 1556년) : 채수의 손자. 1540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헌납, 한성서윤을 역임하였다.
• 채무(蔡楙, 1588년 ~ 1670년) : 1633년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1648년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었다. 저서로는 『백포문집』이 있다.
• 채이항(蔡以恒, 1596년 ∼ 1666년) :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활동하고, 청(淸)나라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려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돌아왔다. 1648년 선공감역(繕工監役),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을 거쳐 평시서령(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 채헌징(蔡獻徵, 1648년 ∼ 1726년) : 167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진주목사, 인동현감, 영해부사 등을 지냈고, 1719년 통정(通政)에 올라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우헌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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