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조 다의당(多義堂) 채귀하[蔡貴河] 선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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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인천(仁川). 호는 다의당(多義堂). 달성 출신. 아버지는 형부상서(刑部尙書) 채원길(蔡元吉)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상장군 고천서(高天瑞)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효성이 출천(出天)하였으며, 문학에 심취하여 영양(永陽)의 정몽주(鄭夢周)와 경전(經傳)을 강습(講習)하고 도의(道義)를 논변하였다.
일찍이 문과급제하여 벼슬이 호조전서(戶曹典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고 정몽주가 선죽교(善竹橋)에서 살해되자, 동지들과 함께 부조현(不朝峴)에 관복을 걸어놓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두문동72현(賢)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다음 해 평산(平山)의 다의현(多義峴)에 옮겨 집을 ‘다의당’이라 이름하고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세상에서는 두문동 72현을 백이숙제(伯夷叔齊)에 비하여 그들의 충절을 찬양하였다.
1740년(영조 16) 영조는 개성에 나가서 그들의 충의를 가상하게 여겨 고려충신부조현(高麗忠臣不朝峴)의 비석을 세우게 하였다. 시호는 정의(貞義)이다. 저서로는 『다의당실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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